공정위 "상반기 7000억 부과" 7월말 잔고는 ‘마이너스’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정재찬)가 올 들어 시멘트 가격담합 6개사에 1994억원(1월 5일), 골판지 원지 가격담합 12개사에 1184억원(3월 13일), 액화천연가스(LNG) 저장탱크 건설공사 입찰담합 13개 건설사에 3516억원(4월 26일), 대규모 유통업법 위반 행위 대형마트 3개사에 238억원(5월 18일), 골판지 고지 구매-원단 판매-상자 판매 가격담합 45개 제지업체에 1039억원(6월 13일)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지만 과징금 곳간은 텅 비었다.

◆7월까지 누계수납액 -15억6000여만원

공정위가 홈페이지 재정정보공개에 올린 세입세출예산 운용 상황에 따르면 지난달 과징금 당월수납액은 마이너스(―) 408억2000여만원으로 올해 7월까지 누계수납액은 마이너스 15억6000여만원으로 나타났다.

과징금 당월수납액은 그 달 납부받은 금액에서 취소소송에서 져 되돌려준 환급액을 뺀 액수를 말한다.

당월수납액은 올해 1월 20억8000여만원, 2월 마이너스 7억6000여만원, 3월 22억6000여만원(누계액 35억8000만원)으로 석달 동안 누계액은 플러스(+)를 유지했지만 4월 당월수납액이 41억5000여만원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누계수납액은 적자로 돌아섰다.

누계수납액 적자는 5월 15억8000여만원으로 늘었지만 6월 당월수납액이 408억4000여만원에 달하며 누계수납액도 392억5000여만원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7월 과징금 당월수납액이 마이너스 408억2000여만원에 달하며 누계수납액은 다시 15억6000여만원 적자가 됐다.

▲ [출처=공정위 홈페이지 재정정보공개]
▲ [출처=공정위 홈페이지 재정정보공개]

공정위가 올 들어 잇달아 거액의 과징금 부과를 결정했다고 발표했지만 곳간은 텅 빈 것을 넘어 오히려 모자란 상황에 이른 것이다. 비슷한 상황은 지난해 상반기에도 발생했다.

지난해 과징금 당월수납액이 2월 157억7000여만원, 4월 252억8000여만원, 6월 31억여원 마이너스를 기록해 누계수납액은 1월 플러스 149억6000여만원, 2월 마이너스 8억여원, 3월 플러스 273억5000여만원, 4월 플러스 20억6000여만원, 5월 플러스 63억여원, 6월 31억1000여만원으로 오르락내리락했다.

지난해 누계수납액은 7월 플러스 171억8000여만원으로 늘어난 후 12월말 3284억4000여만원으로 최종 집계됐다.

◆‘연초 거액 과징금 환급’ 지난해 이어 되풀이

공정위 과징금 곳간이 상반기에 텅 비는 이유는 우선 과징금을 부과받은 업체(피심인)가 법원에 제기한 소송에서 져 환급해야 하는 금액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대법원 특별2부는 지난해 12월 24일 라면 가격담합으로 2012년 과징금 1080억7000만원을 부과받은 농심이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취소소송에서 원고(농심)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공정위는 올해 1월 27일 전원회의를 열어 농심, 오뚜기(98억4800만원), 한국야쿠르트(62억6600만원)에 부과한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직권취소를 결정했다.

공정위가 과징금을 환급할 경우 이미 받은 부과액에 환급가산금을 붙여 되돌려줘야 한다.

2012년 7월에서 9월 사이(의결서 작성일은 7월 12일로 납부기한은 의결서 송달일로부터 60일 이내) 과징금을 납부한 농심 등은 낸 금액에 2014년 7월 24일까지는 연리 4.2%, 올해 3월 7일까지는 2.9%, 그 이후에는 1.8%의 가산금을 더한 금액을 환급받을 수 있었다.

지난해 초 대법원은 이른바 원적관리 원칙에 따라 주유소 확보경쟁을 제한하기로 담합한 행위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은 SK(SK에너지, SK이노베이션 포함), 현대오일뱅크, S-OIL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공정위는 이미 받은 2548억4000만원의 과징금에 환급가산금 321억3000만원을 더한 총 2869억7000만원을 되돌려준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위는 올들어 부과를 직권취소한 라면 가격담합 과징금 1241억8000만원에 가산금을 더한 금액을 환급해주는 바람에 과징금 곳간이 텅 비는 사태가 지난해에 이어 재현됐다.

공정위는 LPG 가격담합으로 현대오일뱅크에 부과한 263억1400만원, 계열사 부당지금으로 SK텔레콤 등 SK그룹 소속 7개사에 부과한 총 347억3400만원의 과징금 부과처분도 올들어 대법원에서 패소함에 따라 이미 받은 과징금을 환급해줬다.

◆지난해 받은 과징금 절반 넘게 환급금으로

공정위는 지난해 부과한 과징금은 총 5889억5000여만원(202건)이라고 지난달 11일 발표했다. 담합 자진신고에 따른 감면액을 제외한 금액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지난 3월 발간한 ‘대한민국 재정 2016’ 자료에 따르면 공정위가 지난해 공정거래법 등을 위반한 사업자로부터 징수한 과징금은 총 6857억2000여만원에 달했다. 한해 과징금 부과액과 징수액이 이렇게 다른 것은 과징금 부과처분 의결서 송달일로부터 ‘60일 이내’에 내도록 하는 납부기한 때문이다.

업체가 2014년 과징금 부과처분을 받았더라도 의결서를 같은해 11월 2일 받았다면 그해가 아닌 다음해 1월 2일(토, 일요일일 경우 3일)까지 납부하면 된다.

공정위가 2014년 과징금 부과를 결정해도 실제 수납은 다음해인 2015년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정위는 지난해 징수한 과징금 총액 6857억2000여만원 중 절반이 넘는 3572억4000여만원을 과징금 환급액(가산금 포함)으로 사용했다.

지난 한해 실제 수납해 국고에 귀속시킨 과징금 액수는 3284억8000여만원(누계수납액)에 불과한 셈이다. 환급액은 2013년 302억6000여만원에 불과했지만 2014년 2518억5000여만원으로 급증했고, 지난해에는 3000억원을 돌파했다.

한해 받은 과징금이 가장 많았던 2014년 징수 총액은 6931억원으로 2013년(3631억1000여만원)에 비해 90.9% 급증했다. 하지만 환급액이 함께 8.3배로 불어나며 누계수납액은 4415억5000여만원에 그쳤다.

◆공정위 “올해 납부 연장-분할 납부 많이 받아들여져”

공정위가 올해 상반기 발표한 과징금 부과액은 7000억원이 넘지만 환급액을 뺀 실제 수납액은 지난해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부과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담합사건의 경우 자진신고 업체는 전액 또는 절반을 감면받을 수 있어 실제 부과액은 공정위 발표보다 적을 가능성이 높다.

또 과징금 부과처분을 받은 업체가 이의신청을 통해 부과액을 줄이거나 납부기한 연장 및 분할 납부 신청으로 과징금을 늦게 낼 수도 있다.

공정위가 시멘트 가격담합에 가담한 6개사에 199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사건에 대해 일부 업체는 이의신청으로 과징금 부과액이 절반으로 줄었고, 일부는 납부기한 연장 또는 분할 납부 신청을 해 받아들여졌다.

공정위 관계자는 올해 7월말 현재 과징금 누계수납액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에 대해 “올 들어 납부기한 연장 및 분할 납부 신청이 많이 인용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올해 상반기 과징금 부과를 결정했더라도 실제 납부는 하반기 이후로 미루어지는 사례가 늘어나며 7월말까지 수납액이 환급액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현상은 내년에도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국고관리법은 공정위가 매년 12월까지 수납한 과징금을 그 해말 전액 국고에 귀속시키고, 다음해 발생하는 환급금은 그해 받은 과징금으로 충당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한 사건에 대해 1~2월 취소하라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면 공정위 과징금 곳간은 한동안 빌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공정위는 환급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한 가산금을 더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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