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새 공정위원장 내정- 12월 상임위원 중도 퇴임

 #1. 2014년 12월 2일 과천심판정
공정거래위원회는 오후 2시 제34회 전원회의를 열어 영화사업자 CJ CGV, CJ E&M, 롯데쇼핑이 신청한 동의의결 건 신청한 동의의결 건에 대한 개시 여부를 심의했다. 의장을 비롯해 위원들이 들어와 각자 자리에 앉자마자 누군가가 카메라를 들고 들어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기자는 이날 전원회의 심의에 앞서 잠시 촬영이 허용된 줄 알고 얼른 스마트폰을 꺼내 몇 컷을 찍었다. 이때 카메라를 든 사람은 “심판정에서 아무나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제지했다. 이날 심의에 참석한 위원은 김학현 부위원장(의장), A상임위원, B상임위원, C상임위원, D비상임위원, E비상임위원, F비상임위원, G비상임위원 8명이었다.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은 노대래 위원장이었지만 후임자가 내정된 탓인지 참석하지 않았다.

#2. 2014년 12월 17일 세종심판정
오전 10시 30분 시작된 제36회 전원회의에 다수의 사진기자들이 모였다. 8일 취임식을 가진 정재찬 공정위원장이 첫 전원회의를 주재하는 날이라 공정위는 본격 심의에 앞서 기자들에게 사진촬영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에 진행된 3번째 심의안건은 동의의결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CJ CGV, CJ E&M, 롯데쇼핑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 등에 대한 건이었다. 이날 심의에는 정 공정위원장, 김학현 부위원장, 상임위원 2명, 비상임위원 4명 등 8명이 참석했지만 2일 전원회의에 나왔던 B상임위원은 보이지 않았다.

▲ 같은 달 17일 정재찬 공정위원장이 정부세종청사 심판정에서 주재한 전원회의 모습.
▲ 같은 달 17일 정재찬 공정위원장이 정부세종청사 심판정에서 주재한 전원회의 모습.

◆임기 9개월 가량 남기고 의원면직

CJ E&M 등 영화사업자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 등 건 동의의결 개시 여부를 결정하는 2일 전원회의 심의에 참석했지만 보름 후 열린 본안 심의에 나오지 않은 B상임위원은 그 사이인 9일 임기(2015년 9월 5일)를 9개월 가량 남기고 의원면직 형식으로 사임했다.

임기가 3년(공정거래법 제39조)인 공정위 상임위원이 9개월 앞서 퇴임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2010년대 들어와 퇴임한 상임위원들 중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물러난 경우도 있지만 B상임위원을 제외하면 남은 기간은 한달 미만이었다.

정재찬 현 공정위원장은 지난 2008년 12월 29일 상임위원에 임명된 후 2년 남짓 지난 2011년 1월 3일 사임했지만 이는 같은 날 공정위 부위원장에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김학현 현 부위원장은 2009년 9월 16일 상임위원에 임명된 후 3년 임기를 불과 9일 남긴 2012년 9월 6일 사임했다. 이후 2014년 1월 27일 부위원장으로 공정위에 복귀했다.

B상임위원의 중도 사임에 대해 공정위 측은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상임위원이 후배들을 위해 임기를 남기고 떠났다면 사임 후 곧바로 후임자가 임명되어야 그 설명이 성립된다.

B상임위원이 2014년 12월 9일 중도 퇴임한 후 후임 상임위원이 임명된 건 한달 이상 지난 2015년 1월 14일이었다.

B상임위원은 2015년 1월 공정위가 인가한 한 공제조합의 이사장 공모에 지원했지만 공직자윤리법 등 사정이 여의치 않아 중도에 포기했다.

◆청와대 "노대래 공정위원장 사퇴"

이달 9일 한 조간신문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에 CJ E&M에 대한 조사를 종용했다는 정부 고위관계자의 증언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공정위 내부 사정에 정통한 고위소식통에 따르면 2014년 하반기 고(故) 김영한(2016년 8월 21일 사망)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공정위 고위 인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CJ E&M의 불공정거래 혐의에 대해 조사를 하라”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한 종편채널은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2013년 말 CJ그룹 최고위층 인사와 전화통화에서 CJ그룹 내 문화사업을 이끌어 온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너무 늦으면 진짜 저희가 난리가 난다”고 말한 녹음 내용을 공개했다.

공정위는 해명자료를 통해 “영화산업 관련 조사는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제기된 현장건의사항에 대한 후속조치로 이루어진 것”이라며 “보도에서 민정수석이 지시했다고 언급한 2014년 하반기에는 이미 조사가 마무리되었다”고 반박했다.

15일 한 공중파방송은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고위 인사는 지난 2014년 6월 당시 청와대 김영한 민정수석으로부터 ‘CJ그룹의 문화콘텐츠 계열사인 CJ E&M의 불공정행위를 조사하라’고 압박하는 전화를 받았다”며 공정위가 청와대의 말을 듣지 않자 공정위원장을 경질했다는 의혹도 나왔다고 보도했다.

당시 청와대는 CJ에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요구했던 상황이라고 언급한 방송은 “그런 압력이 있어도 원칙에 어긋나는 일은 안 되기 때문에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공정위 전 고위관계자의 말을 전하며 “청와대는 4개월 뒤 1년 이상 임기가 남은 노대래 공정위원장의 퇴진을 발표했다”고 덧붙였다.

2013년 4월 21일 임기 3년의 공정위원장에 취임한 노대래 위원장에 대해 청와대는 2014년 11월 18일 사의를 표명했다며 정재찬 새 공정위원장을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공정위는 “CJ 관련 사건은 신고, 제보, 업계 관계자 건의, 언론보도 등을 토대로 통상적 절차에 따라 공정위의 독립적 판단에 따라 진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전원회의 하루 앞두고 돌연 연기

21일 다른 조간신문은 “공정위가 2014년 영화사 불공정행위를 조사하면서 300억∼400억원 규모의 소비자후생 방안을 담은 CJ의 동의의결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2013년 동의의결제 도입 이후 기업이 신청한 5건 중 유일한 불허 결정으로 당시 청와대에서 CJ E&M의 검찰 고발을 위해 공정위에 전방위적 압력을 넣었던 정황과 연관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특히 CJ 동의의결 신청은 단 10일 만에 기각됐다”며 “통상 2~3개월 걸렸던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CJ 관련 동의의결 불개시는 법 위반 증거의 명백성 등 사건의 성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공정위가 전원회의 심의를 거쳐 독립적으로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 등 위반 혐의로 공정위 조사를 받은 영화사업자 CJ E&M 등이 동의의결을 신청한 건 2014년 11월 21일이다.

공정위는 다음달 12월 2일 전원회의를 열어 개시 여부를 심의한 후 바로 다음날 인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하며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 등 위반 본안 사건 심의를 4일 개최한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3일 밤 돌연 "4일 오후 2시에 열기로 한 심의를 연기한다"고 공지했다.

CJ E&M 등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 등 사건 심의는 같은 달 17일 열렸다. 이 사이 노대래 공정위원장은 5일, B상임위원은 9일 각각 퇴임했다.

공정위는 정재찬 새 공정위원장이 17일 주재한 전원회의에서 CJ CGV가 계열 배급사(CJ E&M)가 배급하는 영화에 스크린 수, 상영 기간 등을 차별적으로 유리하게 제공했다는 이유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32억원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제작사와 투자 계약을 할 때 금융비용을 수취할 수 있도록 거래 조건을 설정한 것으로 조사된 CJ E&M에 대해서는 시정명령을 부과했다.

공정위 회의운영 및 사건절차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사건을 조사한 심사관(사무처 소속)이 심사보고서를 제출하면 전원회의 의장(공정위원장)은 상임위원 1인을 주심위원으로 지정해 심의준비절차를 거쳐 심의에 부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정위 심사관이 CJ E&M 등에 대한 조사 결과를 담은 심사보고서를 전원회의에 제출한 것은 노대래 공정위원장이 재임하던 2014년 10월 초. 그런데 최종 제재 결정은 정재찬 위원장이 취임한 직후인 12월 17일 내려졌다.

동의의결 개시 여부를 결정하는 심의에 참여했던 B상임위원이 본안 사건 심의를 앞두고 중도 퇴임한 것도 또 다른 의혹의 빌미가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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