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운영-사건절차 규칙 개정안...“투명성 확보에 구멍”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정재찬)가 그동안 유명무실한 규정으로 존재해 온 심의준비절차를 없애고 의견청취절차를 새로 만들기로 했다.

공정위는 절차의 복잡성 등으로 활용이 미미했던 심의준비절차를 대폭 간소화한 의견청취절차를 신설하는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위원회 회의 운영과 사건절차 등에 관한 규칙(고시)' 개정안을 마련해 행정예고했다고 14일 밝혔다.

◆“상임위원들 기업-로펌 관계자 수시로 만나고도 기록 안 남겨”

현행 회의 운영과 사건절차 규칙은 공정거래법 등 위반 혐의 내용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받은 피심인이 의견서를 제출한 후 참고인 또는 이해관계인 등의 진술의 진정성에 다툼이 있거나, 사실관계가 복잡하거나 쟁점이 많은 경우, 피심인의 방어권 보장 및 심의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유가 있는 경우 전원회의 등 의장은 심의준비절차에 부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개시 결정이 나면 전원회의 주심위원 또는 소회의 의장이 심판관리관(사무처 소속)의 보좌를 받아 심의준비절차를 진행하는데 심사관과 피심인의 주장과 증거를 정리하는 심의준비기일은 원칙적으로 공개로 열어야 한다.

본지가 공정위에 심의준비기일 개최 현황 정보공개를 신청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정위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단 3번 개최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건으로 보면 2015년 부당지원행위에 대한 건, 지난해 구속조건부거래행위 등에 대한 건 등 2건에 불과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지상욱 의원(서울 중구성동을)은 지난해 10월 17일 열린 공정위 등에 대한 종합국감 질의에서 “정부세종청사관리소에서 제출받은 2014년부터 2016년 7월까지의 공정위 출입기록 2만2000여 건을 분석한 결과, 공정위 사건의 피의자인 대기업은 2년 7개월 동안 총 4254회(평일 하루 평균 6.94회), 법률대리인인 로펌은 총 4262회(하루 평균 6.95회) 공정위 임직원을 방문했다”며 “전원회의 위원인 공정거래위원장은 기업체 8회 로펌 3회, 부위원장은 기업체 44회 로펌 8회, 상임위원(3명)은 기업체 317회, 로펌 357회의 비공식 개별 접촉을 가졌다”고 공개했다.

▲ 지난해 10월 17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종합국감에 참석한 정재찬 공정위원장이 새누리당 지상욱 의원(오른쪽)의 질의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는 모습.
▲ 지난해 10월 17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종합국감에 참석한 정재찬 공정위원장이 새누리당 지상욱 의원(오른쪽)의 질의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는 모습.
▲ [자료=지상욱 의원실]
▲ [자료=지상욱 의원실]

지상욱 의원은 “공정위는 공공기록문관리법에 따라 조사부터 심사·의결까지의 전 과정을 문서로 작성해야 하지만 의결 직전 접촉한 기업·로펌과의 면담 내용이 기록된 건 단 1건도 없었다”며 “은 공식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며 “이래서 국민들은 공정위가 ‘공정’은 없고 ‘거래’만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재찬 공정위원장은 “공정위 출입 자체를 불법적인 로비로 보아서는 안된다”며 “상임위원 이상 접촉은 ‘공정위 내에 있는 심사관 설명은 듣고 피심인 설명은 왜 안 듣느냐’는 문제 제기가 많아 피심인 측에게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공정위 상임위원들은 공식적으로 피심인 측의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심의준비절차가 아닌 비공식 개별 접촉을 통해 기업체 관계자 317회, 로펌 변호사 등을 357회나 만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가 최근 4년간 개최한 심의준비기일 3번(2개 안건) 중 1번은 지 의원의 지적이 있은 후인 같은 달 24일 열렸다. 심의준비기일을 공개로 한다는 규정은 지키지 않았다.

▲ [출처=공정위 정보공개 자료]
▲ [출처=공정위 정보공개 자료]

◆심의준비절차 대신 내놓은 개선안 ‘절차 비공개’로 되레 후퇴

공정위는 이런 유명무실한 심의준비절차를 없애고 대신 의견청취절차를 도입하는 개선안을 뒤늦게 내놓았다.

새로 도입되는 의견청취절차는 기존의 심의준비절차와 큰 차이가 없지만 주심위원, 심사관, 피심인, 심결보좌 담당자 모두가 참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서도 피심인과 심사관 중 한쪽이 참석하지 않아도 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심의준비절차와 달리 의견청취절차는 공개 규정을 두지 않아 절차의 투명성 확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공정위 관계자는 “개정안은 심결담당관이 의견청취절차의 안건, 일시 및 장소, 참석자, 진행 순서, 심사관과 피심인의 발언 요지 등 주요 내용을 기록·보존하여야 하며 그 기록을 첫 심의기일 전에 각 회의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행 심의준비절차는 심판관리관이 심의준비절차 종료 후 첫 심의기일에 결과보고서를 요약해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정위가 개정안에 따라 의견청취절차를 새로 도입한다면 그 결과를 본 심의 첫 기일에 반드시 구두로 보고하도록 하는 규정을 추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매일마케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