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현 전 부위원장 '이재용 부회장 공판' 증인신문서 드러나

공정거래위원회가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 따라 발생한 순환출자 형성 또는 강화 이슈와 관련 삼성그룹 계열사가 처분해야 할 주식 수를 최종 결정하기에 앞서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먼저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학현 전 공정위 부위원장(현 단국대 초빙교수)은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19회 공판 증인으로 출석해 지난 2월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조사 때의 진술내용을 확인했다.

◆2015년 10월 14일 ‘1000만주 처분’ 결재 한달 후 재검토 지시

김학현 전 부위원장은 이날 증인신문에서 2015년 12월 23일 오후 서울에서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현 자유한국당 의원)를 만나 삼성계열사가 처분해야 할 주식 수에 대해 보고한 후 ‘500만주 처분’으로 결정하는 지침(가이드라인)에 정재찬 공정위원장이 결재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 김학현 전 공정위 부위원장이 26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19회 공판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 대법정으로 가는 모습.
▲ 김학현 전 공정위 부위원장이 26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19회 공판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 대법정으로 가는 모습.

삼성 측은 지난 2015년 9월 2일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등기를 마친 후 같은 달 8일 공정위에 합병에 따른 순환출자 형성 또는 강화 이슈와 관련한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조항(제9조의2)이 추가돼 2014년 7월 15일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박영수 특검팀 수사와 증인신문 등에 따르면 공정위는 같은 해 10월 14일 제일모직(존속)-삼성물산(소멸) 합병에 따른 순환출자 문제 해소하려면 ‘합병 후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하게 되는 삼성SDI와 삼성전기가 각각 500만주, 총 1000만주를 처분해야 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당시 신영선 사무처장(현 부위원장), 김학현 부위원장, 정재찬 위원장까지 결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이 내용을 삼성 측에 구두로 통보했지만 유권해석 내용 공식통보 및 외부 발표는 하지 않았다.

같은 해 11월 6일 조선일보는 “공정위가 두 회사 합병으로 인해 일부 순환출자가 새로 생기거나 기존의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된 것으로 결론 내렸다”며 “주식을 처분해야 하거나 매각 대상이 되는 계열사의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이에 공정위는 곧바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으로 인해 신규 순환출자 형성 또는 기존 순환출자 강화가 발생하였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현재 검토가 마무리 단계에 있는 것은 사실이나 아직 최종 확정·통보되지는 않았다”는 내용의 보도해명자료를 냈다.

김학현 당시 부위원장은 같은 달 17일 저녁 삼성 미래전략실 김종종 당시 사장을 서울 인근 외부식당에서 만나 “(처분해야 할 주식) 1000만주 중 삼성SDI 부분은 재검토해 달라”는 취지의 입장을 들은 후 공정위 기업집단과 실무진에게 “법 적용이 잘못된 거 아니냐”며 재검토를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공정위는 이 이슈를 같은 해 12월 16일 정부과천청사 심판정에서 열린 전원회의 토의사항 안건으로 상정해 위원들의 의견을 들었다.

공정위 경쟁정책국 기업집단과는 위원들의 토의 결과를 바탕으로 삼성 측이 처분해야 할 주식 수는 900만주로 잠정 결정하고 일요일인 20일 문건을 작성해 공정위 청와대 파견 행정관(4급)과 김학현 당시 부위원장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김학현 부위원장은 ‘900만주 처분’을 담은 보고서를 들고 간 사무관(이후 서기관 진급)에게 “500만주 처분의 2안을 추가하라”고 지시했다.

공정위는 김학현 당시 부위원장이 2안을 추가한 보고서 내용을 23일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보고한 후 위원장 결재를 받아 ‘500만주 처분’을 최종 결정하고 이를 발표했다.

공정위 설립 근거가 되는 공정거래법은 “전원회의는 공정위 소관의 법령이나 규칙, 고시 등의 해석적용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법 제37조의3 제1항 제1호).

▲ 본지가 2015년 12월 열린 전원회의와 관련 공정위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내용. 공정위 측은 답변 후 장소를 ‘세종청사’에서 ‘과천청사’로 정정했다.
▲ 본지가 2015년 12월 열린 전원회의와 관련 공정위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내용. 공정위 측은 답변 후 장소를 ‘세종청사’에서 ‘과천청사’로 정정했다.

공정위 회의운영 및 사건철차 등에 관한 규칙 제8조(의안의 구분)은 의안을 결정사항, 의결사항, 보고사항 또는 토의사항으로 구분하며 토의사항에 대해 “각 회의의 결정 또는 의결 이전에 각 위원이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결론을 도출할 필요가 있는 사안을 말한다”며 “각 회의의 의장은 회의진행 과정에서 결론이 도출되고 결정 또는 의결을 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이를 결정 또는 의결사항으로 변경하여 처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정위가 삼성 측의 유권해석에 대해 당초 결정내용(1000만주 처분)을 변경하며 전원회의 의결사항이 아닌 토의사항으로 상정해 처리하는 바람에 문제를 초래한 셈이다.

박영수 특검팀은 올해 2월초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정재찬 공정위원장과 김학현 전 부위원장을 비공개 소환해 조사했다.

◆김학현 당시 부위원장 ‘전원회의 논의’ 미리 삼성 측에 알려줘

김학현 전 부위원장은 법정 증인신문에서 2015년 10월 14일 ‘1000만주 처분’에 결재한 이유에 대해 “실무자가 가져온 요약보고서를 보니 크게 틀리지 않은 것으로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다”며 “당시 순환출자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특검팀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 결정된 2015년 7월17일 김 당시 부위원장이 “합병 건은 아무리 봐도 삼성물산 주주들 스스로 이재용한테 부를 이전하는 느낌이다. 이재용의 삼성그룹 승계를 위해 기꺼이 희생했거나 속았다”는 내용을 지인들에게 카카오톡으로 보낸 자료를 제시하며 반박했다.

특검팀이 같은 해 6월 9일 한겨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땐 신규 순환출자 금지 적용받을 수도’라는 제목의 기사를 제시하며 “부위원장 취임 후 기사 스크랩을 매일 아침 보고 받지 않느냐”고 지적하자 김학현 전 부위원장은 “합병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순환출자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답변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다음달 삼성 측 김종중 당시 사장을 만난 후 재검토를 지시한 이유에 대해서는 “오류가 있는 결정을 바로잡으려 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공정위의 추가 논의는 (신규 순환출자 금지와 관련 개정된) 공정거래법 해석이 잘못돼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어 이뤄진 것”이라며 “이왕에 재검토하는 거 제대로 하자고 해서 전원회의에 올리기로 위원장에게 보고해 결정됐다”고 덧붙였다.

▲ 김학현 전 부위원장은 이날 오후 2시부터 다음날 0시 40분 넘어서까지 특검팀 증인신문과 변호인 반대신문에 대해 증언했다.
▲ 김학현 전 부위원장은 이날 오후 2시부터 다음날 0시 40분 넘어서까지 특검팀 증인신문과 변호인 반대신문에 대해 증언했다.

그러자 특검팀은 김학현 전 부위원장이 청와대 최상목 당시 경제금융비서관(현 기획재정부 차관)과 11월 17일, 24일, 27일, 12월 9일, 12일, 22일, 23일 전화로 통화하거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기록을 공개했다.

김 전 위원장은 삼성 합병에 따른 순환출자 형성 또는 강화 이슈를 다룬 공정위 전원회의가 열리기 전인 12월 8일 김종종 당시 사장에게 “현재론 다음주 16일 전원회의에서 논의할 것 같음”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김 부위원장은 특검팀이 전원회의가 열린 16일 당일 저녁 9시19분께 김종중 사장과 전화통화한 사실을 제시하자 “전원회의 결과를 알려준 게 아니고 김 사장이 먼저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특검팀이 같은 달 22일 최상목 당시 비서관이 전화로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이 아주 역정을 낸다. 상황이 좋지 않다. 형님이 위원장님께 2안(500만주 처분)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설득해달라”고 말했다는 김 전 부위원장의 올해 2월 특검조사 진술내용을 공개하자 김 전 부위원장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진술했다기보다 검사가 그렇게 말했다”고 증언했다.

진술조사를 작성한 특검팀 검사가 "검사가 이런 내용을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냐. 이 이야기를 누가 먼저 했느냐"고 질문하자 김 전 부위원장은 "내가 먼저 말했지만 안종범 수석이 2안으로 해라고 했다는 것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공정위는 삼성 합병에 따라 발생한 순환출자 형성 또는 강화 이슈와 관련 기존의 ‘1000만주 처분’을 재검토하기 위한 12월 16일 전원회의를 열었지만 1주일이 지난 23일에야 ‘500만주 처분’으로 최종 결정하고 정재찬 공정위원장의 결재를 거쳐 다음날 24일 ‘합병 관련 신규 순환출자 금지 제도 법 집행 가이드라인 마련- 삼성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으로 3개 순환출자 고리 강화 발생’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만들어 출입기자들에게 배포했다. 보도일자는 27일 낮 12시 이후로 지정했다.

◆정재찬 공정위원장 국회 제출 거부한 문건·일지 법정서 공개돼

정재찬 공정위원장은 지난 2월 15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015년 합병 과정에서 공정위가 삼성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특검이 수사 중인 사안이라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답변을 회피하며 가이드라인 마련과 관련한 전원회의 토의 사항, 처분주식 변경 전후의 결재문서, 공정위 실무자가 작성했다는 이른바 외압일지를 제출하라는 의원들의 요구도 거부했다.

하지만 김학현 전 부위원장 증인신문이 이루어진 공판에서 삼성 측의 유권해석 의뢰에 따라 공정위 경쟁정책국 기업집단과 당시 사무관(현 서기관)이 기안해 2015년 10월 14일 기업집단과장, 경쟁정책국장, 신영선 당시 사무처장(현 부위원장), 김학현 당시 부위원장, 정재찬 공정위원장이 결재한 ‘1000만주 처분’ 문서와 가이드라인을 확정하기 전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에 보고한 문건 등이 공개됐다.

특검팀은 당시 사무관이 작성한 일지 내용도 자세히 공개했다.

▲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2월 15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모습. 정재찬 위원장 오른쪽이 신영선 부위원장.
▲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2월 15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모습. 정재찬 위원장 오른쪽이 신영선 부위원장.

정재찬 공정위원장은 ‘1000만주 처분’ 문서에 결재한 후 “발표 여부 관련 BH(청와대)와 협의해보라”는 지시를 내렸고, 공정위 청와대 파견 행정관은 “공정위에서 먼저 발표하지 말고, 삼성이 먼저 공개하되 투자자 보호 대책을 함께 마련해 시장에 충격 없이 하라”는 윗선 지시를 공정위에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학현 당시 부위원장은 11월 17일 삼성 측 김종중 당시 사장을 만난 후 다음날 재검토를 지시했다.

공정위 기업집단과장의 지시로 일지를 작성했다는 당시 사무관은 24일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17회 공판 증인으로 출석해 작성 이유를 묻는 특검팀의 질문에 “이유를 정확히 듣지는 못했지만 추측하건대 내부 의사결정이 번복된 것이 있었고, 그것이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었다”며 “언론과 국회의 관심이 큰 사안으로, 사실 확인이 안될 수 있으니 기록을 하라고 지시한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지 중 11월 12일에는 ‘11월 17일 김학현 부위원장과 김종중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이 만난다’는 삼성전자 임원의 말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김학현 전 부위원장 증인신문에서 “퇴근하고 서울 방향으로 올라오던 11월 17일 오후 5시30분께 김종중 사장의 전화를 받고 7시께 판교 식당에서 만났다”며 일지 내용을 부인했다.

김학현 전 부위원장은 김종중 사장에 대해 “2000년대 초반 알게 되었는데 잘 아는 친구의 친구”라고 설명했다. 특검팀이 제시한 증거에 따르면 그 친구는 공정위에 근무하다 삼성 계열사에 재취업한 정모씨로 드러났다.

김학현 전 부위원장에 대한 증인신문은 오후 2시에 시작돼 자정을 넘긴 밤 12시 40분을 넘어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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