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파견 행정관에 전화 같은 로펌 변호사 만나게 해

▲ 한국경쟁포럼(회장 권오승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이 지난 4월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 대회의실에서 연 ‘새 정부의 경쟁정책’ 세미나에 공정위 출신 인사들이 다수 참석했다. 권오승 회장(사진 앞줄 오른쪽 5번째)은 2006년 3월부터 2008년 3월까지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냈다.
▲ 한국경쟁포럼(회장 권오승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이 지난 4월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 대회의실에서 연 ‘새 정부의 경쟁정책’ 세미나에 공정위 출신 인사들이 다수 참석했다. 권오승 회장(사진 앞줄 오른쪽 5번째)은 2006년 3월부터 2008년 3월까지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냈다.

2015년 12월 19일 토요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실 파견근무 중인 A행정관은 공정위 전 사무처장으로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있는 B씨가 전화를 걸어와 만나자는 요청을 받고 서울시내 한 호텔커피숍으로 나갔다. 그 자리에는 B씨 외에도 공정위 출신으로 같은 로펌에 근무하는 C고문, D변호사도 나와 있었다.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재판 증인으로 나온 A행정관은 박영수 특별검사팀 검사가 증거를 제기하며 묻자 이들을 만난 사실이 있다고 인정했다.

◆처음엔 과장 출신이... 다음엔 사무처장 출신이 자리 만들어

박영수 특검팀 검사는 이날 법정에서 김앤장 D변호사가 A행정관을 만난 후 “순환출자 해소 관련해 BH(청와대) A과장(A행정관)을 만나서 서류를 전달하고 설명을 했습니다. 소멸 존속의 구분에 따른 차이는 공정위 입장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고 하였고, 공정위 최초 보고도 신규가 아니라 강화였다라고 합니다”는 내용을 문자메시지를 삼성전자의 전무에게 보냈고, 이를 받은 전무는 이를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에게 전달했다며 그 내용을 공개했다.

A행정관은 며칠 전에도 김앤장 C고문의 전화를 받고 점심시간 무렵 청와대 연풍문 앞에서 잠시 만났는데 그 자리에 D변호사가 나와 있었다고 증언했다.

C고문에 대해 A행정관은 “2007년 무렵 당시 공정위 시장조사팀 사무관으로 근무할 때 팀장이었다”고 말했다.

김앤장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 따른 순환출자 문제와 관련 삼성 측의 법률자문을 맡고 있었다.

2015년 9월 2일 제일모직(존속)-삼성물산(소멸) 합병 등기(신설회사 이름은 삼성물산)를 마친 삼성 측은 같은 달 8일 공정위에 합병에 따른 순환출자 형성 또는 강화 이슈와 관련해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박영수 특검팀 수사 결과 공정위는 같은 해 10월 14일 합병에 따라 발생한 순환출자 문제를 해소하려면 ‘합병 후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하게 되는 삼성SDI와 삼성전기가 각각 500만주, 총 1000만주를 처분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해 기업집단과장, 경쟁정책국장, 사무처장, 김학현 부위원장, 정재찬 위원장까지 결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공정위는 이를 다음날 삼성 측에 비공식 통보하고도 공식 통보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검토 과정을 거쳐 같은 해 12월 23일 ‘삼성SDI가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 처분’으로 바꾸어 최종 결정했다.

공정위 부위원장 출신으로 김앤장에 들어간 E고문이 이 과정에서 공정위 김학현 당시 부위원장과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한 것으로 박영수 특검팀 수사 결과 드러났다.

공정위 기업집단과 당시 사무관은 김학현 부위원장이 “김앤장 E고문이 한 번 더 의견을 내고 싶다고 하니 들어봐주라”고 지시했다고 일지에 남겼다.

박영수 특검팀은 지난 2월 3일 공정위 정부세종청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이 일지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A행정관에 먼저 전화를 건 김앤장 B고문은 공정위 과장(4급),   C고문은 사무처장(1급),  김학현 부위원장과 여러 차례 전화통화한 것으로 조사된 E고문은 부위원장(차관급)으로 퇴직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 후보자 “현직 후배에 연락하지 말라” 당부

이달 2일 국회 정무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공정위를 퇴직하고 로펌과 기업에 취업한 OB(Old Boy) 선배들이 후배와 조직을 사랑한다면 현직 후배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는 연락을 취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 김상조 공정위원장 후보자는 2일 국회 정무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참석해 “공정위 OB 선배들이 현직 후배에게 불필요한 연락을 취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 김상조 공정위원장 후보자는 2일 국회 정무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참석해 “공정위 OB 선배들이 현직 후배에게 불필요한 연락을 취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이는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부산 연제)이 “공정위 퇴직자 중 상당수가 대형로펌과 대기업에 취업하고 있는데 이는 공정위 업무의 공정성을 저해할 수 있는 위협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이에 대한 후보자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나왔다.

김해영 의원(부산 연제)은 지난해 6월 “공정위에서 제출받은 ‘최근 5년간(2012년 2월~2016년 5월) 공정위 취업심사 대상 퇴직공무원 재취업 현황’을 분석한 결과 총 20명 중 13명은 현대건설, 현대백화점, LG경영개발원 등 대기업에, 4명은 김앤장, 바른, 태평양 등 대형로펌에 들어갔다”고 공개했다.

김해영 의원의 공개 직후인 지난해 7월에는 공정위 퇴직자 2명이 롯데쇼핑, 삼성물산(합병 후 법인)에 취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영수 특검팀 검사는 지난달 26일 열린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재판 증인으로 출석한 김학현 전 부위원장을 신문하며 “공정위가 퇴직 직원에게 대기업 고문 자리를 알선해준다”며 “김 전 부위원장은 지난 2월 수사 때 ‘대기업 측의 요청이 있으면 공정위 운영지원과가 희망하는 직원을 알선하는 역할을 하는데, 공정위 직원의 고문직 취업은 약 20년 정도 됐다’고 진술했다”고 공개했다.

공정위가 추천 요청을 받는 대기업은 삼성전자, 삼성물산, 현대건설, 현대기아차, SK하이닉스, 롯데, LG, 한화, CJ, 신세계, 현대백화점, 두산, 농협 등 20여개라고 특검팀 검사가 관련 자료를 제시했다.

이와 관련 정재찬 공정위원장은 이달 2일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재판 증인으로 출석해 “기업이 인사 추천을 요청하면 운영지원과장이 직원들 중에서 지원을 받아 대상자를 선정해 인적 사항을 해당기업에 보내준다”고 답변했다.

공정위 퇴직자의 대기업 및 로펌 취업 실태를 공개한 김해영 의원은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감시하던 공정위 공직자들이 관련 업계로 재취업하는 행태는 노골적으로 방패막이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특히 공정위를 퇴직한 후 대기업에 재취업한 13건 중 9건은 ‘고문’이라는 고위 직책으로 영입된 것으로 나타나 사실상 업계의 ‘공피아 전관예우’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전인 지난달 30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는 공정위 부이사관 퇴직자의 삼성전자 고문 취업심사 요청에 대해 ‘취업가능’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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