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현대모비스 신청 건 개시여부 결정 두 달 더 미뤄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김상조)가 현대모비스(주)의 동의의결 신청에 대해 전원회의를 열어 심의했지만 개시 여부 결정을 미루는 바람에 공정위 스스로 만든 규정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공정위는 지난달 30일 열린 전원회의에서 '현대모비스의 거래상 지위남용 행위에 대한 건 관련 동의의결절차 개시 신청 건'을 심의한 결과 신청인 현대모비스가 제시한 동의의결 시정방안에 미흡한 점이 많았지만 신청인이 좀 더 개선된 시정방안을 제시하겠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시한 점 등을 고려해 관련 심의를 속개하기로 결정했다고 11일 발표했다.

동의의결을 신청한 현대모비스가 시정방안을 보완해 내달 27일까지 제출하면 이후 심의를 속개해 동의의결 개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고시에 “각 회의 보고 후 14일 이내 결정해야” 규정

동의의결제도를 운영하기 위해 공정위가 고시로 정한 ‘동의의결제도 운영 및 절차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위원회는 동의의결 신청을 보고받은 후 14일 이내(자문회의 자문기간은 제외)에 개시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공정위 고시 제2017-7호 제5조 제1항), 한번 더 심의하기로 결정해 이를 지킬 수 없게 됐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대모비스는 2010년 1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정비용 자동차부품 사업에 대해 매년 과도한 매출목표를 설정해 임의매출, 협의매출 등 명목으로 부품대리점에 일방적으로 할당하거나 구입을 강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를 진행한 공정위 사무처 소속 심사관은 현대모비스의 이런 행위는 구입의사가 없는 대리점들에게 자동차부품을 강요한 ‘구입강제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은 사업자는 자기의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상대방과 거래하는 행위(구입강제 등)를 하거나, 계열회사 또는 다른 사업자로 하여금 이를 하도록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법 제23조 제1항 제4호). 이를 위반하면 시정명령, 과징금 부과 처분과 함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러자 현대모비스는 지난 6월 22일 동의의결을 신청하며 거래질서 개선 및 대리점 피해구제 등 시정방안을 제시했다.

동의의결제는 사업자가 중대·명백하지 않은 법 위반 혐의 사항에 대해 스스로 원상회복, 소비자피해 구제 등 타당한 시정 방안을 제안하고 공정위가 타당성을 인정하는 경우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 수렴을 거쳐 위법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신속하게 종결하는 제도라고 공정위는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현대모비스가 동의의결을 신청한 지 두 달 이상이 흐른 지난달 30일에야 전원회의를 열어 동의의결절차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심의를 진행했다. 그나마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심의를 속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면서 이미 제시한 시정방안을 보완해 제시하라며 현대모비스에 2개월 가량의 시간을 더 줘 공정위 스스로 ‘위원회 각 회의(전원회의 또는 소회의) 보고 후 14일 이내 결정해야 한다’는 조항을 무시한 꼴이 됐다.

이와 관련 공정위 측은 현대모비스가 신청한 동의의결 건의 위원회 각 회의 보고 날짜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위원회의 여러 사정으로 고시가 규정한 기한을 지키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6월 28일 첫 전원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6월 28일 첫 전원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주재한 전원회의 심의에서 “(현대모비스가) 동의의결을 신청했다면 공정위의 개시 여부 결정과 관계없이 제시한 시정방안을 이행하겠다는 확실한 의견을 표시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도 ‘늑장 처리’ 굴레 못 벗어

한편 공정위는 현대모비스의 거래상 지위남용 행위 혐의와 관련 2013년 12월 첫 현장조사를 실시했지만 3년 가량 지난 지난해 말에야 조사 내용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현대모비스에 송달한 것으로 확인돼 ‘늑장 처리’라는 비난까지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현대모비스의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 건은 본안 심의로 갈 경우 검찰 고발과 관련이 있어 공소시효(5년) 문제도 걸려있다.

지난 6월 취임한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11일 경제민주화 관련 10개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공정위가 사건을 처리하는데 너무 오래 걸린다”는 지적이 나오자 “공정위의 소극적, 늑장 사건 처리 등으로 인해 국민적 신뢰는 절대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며 “반성하고 죄송하다”고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현대모비스의 동의의결 건을 보면 김 공정위원장 역시 ‘늑장 처리’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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