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방안 보완하라며 두달 가까운 시간 더 주었지만 “미흡”

▲ 22일 속개된 현대모비스의 동의의결절차 개시 신청 건 전원회의 심의에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가운데)을 비롯한 7명의 위원이 참석했다. [사진제공=공정위]
▲ 22일 속개된 현대모비스의 동의의결절차 개시 신청 건 전원회의 심의에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가운데)을 비롯한 7명의 위원이 참석했다. [사진제공=공정위]

현대모비스(주)가 거래상 지위남용 혐의와 관련해 신청한 동의의결 절차 개시 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위원회 김상조)가 기각(불인용) 결정을 내렸다.

공정위는 현대모비스가 동의의결을 신청하며 제시한 시정방안이 대리점 피해구제, 구입강제(밀어내기) 행위 근절에 효과적인 방안으로 보기 곤란해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이번 결정으로 현대모비스는 거래상 지위남용 혐의에 대한 본안 심의를 받아야 해 결정 내용에 따라 갑을 관계에 대한 사회적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처지로 내몰리게 됐다.

공정위도 동의의결 절차 개시 여부에 대한 결정을 신속하게 내리지 않아 스스로 만든 고시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공정위 고시 ‘동의의결제도 운영 및 절차 등에 관한 규칙’은 “전원회의 등은 보고받은 후 14일 이내에 절차 개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시 제5조 제1항)”고 규정하고 있다. 현대모비스가 신청한 동의의결 건에 대한 공정위의 불인용 결정은 지난 8월 30일 전원회의 첫 심의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80일 이상 지나서 내려졌다.

◆공정위 “구입강제 재발 막는 근본대책 못 된다”고 했지만...

공정위 발표와 전원회의 심의 등에 따르면 현대모비스는 2010년 1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3년 11개월 동안 정비용 자동차부품 사업에 대해 매년 과도한 매출목표를 설정하고, 전국 부품사업소 직원들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임의매출, 협의매출 등 명목으로 부품대리점에 일방적으로 물량을 할당하거나 구입을 강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사업자는 자기의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상대방과 거래하는 행위(구입강제 등)를 하거나, 계열회사 또는 다른 사업자로 하여금 이를 하도록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제4호(구입강제) 위반에 해당한다고 공정위는 판단했다. 이 조항을 위반하면 시정명령, 과징금 부과 처분과 함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조사를 진행한 공정위 사무처 소속 심사관(시장감시국장)은 조사 내용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지난해 11월 현대모비스에 보냈다.

이에 현대모비스는 올해 5월 24일 동의의결 절차를 신청한 후 다음달 22일 시정방안을 공정위에 제출했다. 1년간 보상 실시, 상생기금 100억원 출연 등 대리점 피해구제 방안과 본사와 대리점 간 바람직하고 모범적인 거래구조 개선 등 갑을관계 거래 질서 정상화 방안을 담았다.

공정위는 8월 30일 전원회의를 열어 심의한 끝에 현대모비스가 제시한 방안이 근본적인 시정대책으로 부족하고 갑을 관계의 발전적인 미래상 정립 측면에서도 미흡하다고 판단했지만 현대모비스 측이 실질적 피해구제와 거래질서 정상화를 위해 추가 시정방안을 제시하겠다고 밝혀 심의속개 결정을 내리며 추가 시정방안을 10월 27일까지 제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22일 속개된 전원회의 심의에서 중립적인 피해구제협의회 구성을 통한 신속한 보상, 담보설정을 신용보증기금으로 전환하고 비용 지원, 상생기금 100억원 추가 출연 등 보완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현대모비스가 제시한 시정방안이 대리점 피해를 실질적으로 구제하기 위한 방안으로 보기 어렵고, 구입강제 행위의 재발을 막기 위한 근본적이고 실효적인 방안이 될 수 없고, 지원방안도 상당수가 이미 시행 중인 내용이라는 등의 이유를 들어 동의의결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동의의결제는 사업자가 중대·명백하지 않은 법 위반 혐의 사항에 대해 스스로 원상회복, 소비자피해 구제 등 타당한 시정 방안을 제안하고 공정위가 타당성을 인정하는 경우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 수렴을 거쳐 위법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신속하게 종결하는 제도로 2012년 4월 시행됐다.

공정위는 “동의의결제도가 도입되면 기존의 시정조치에서는 부과할 수 없는 소비자 및 중소기업 피해의 신속하고 실질적인 보상 등이 가능해진다”며 대상에 대해 “법 위반 여부가 중대하고 명백하지 않는 행위에 한정하고, 담합행위나 형사처벌이 필요한 위반행위는 제외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심의 때 “최고경영자 레벨의 의지 표현 있었어야” 지적 나와

현대모비스의 거래상 지위남용 혐의를 조사한 공정위 심사관은 8월 첫 전원회의 심의에서 “형사처벌이 필요한 검찰고발 요건에 해당된다”며 기각 결정을 내려져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피심인 현대모비스 측 대리인은 “협의매출로 인한 대리점의 피해가 미미하다”며 “최초 심사보고서에 의하면 고발 요건에 해당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 조사 결과를 담은 심사보고서를 보낸 공정위 사무처는 현대모비스 측이 동의의결을 신청한 후 경정 심사보고서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첫날 심의를 주재한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위원들의 질문이 모두 끝난 후 “현대모비스는 (현대기아차그룹) 지배구조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며 “밤새 고민했다”고 말했다.

김 공정위원장은 그러면서 “(현대모비스가) 동의의결 신청의 진정성을 보이려고 했다면 제시한 시정방안을 공정위의 (개시 여부) 판단과 무관하게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공정위는 다음달 9월 11일 보도자료를 내 “신청인(현대모비스)이 제시한 동의의결 시정방안에 미흡한 점이 많으나 신청인이 좀 더 개선된 시정방안을 제시하겠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시 한 점을 고려해 보완된 시정방안이 제출되면 심의를 속개해 개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속개된 심의에서도 심사관은 “검찰 고발이 필요하다는 첫 심의 때의 의견을 기본적으로 유지한다”며 추가로 제시한 시정방안도 상당수 이미 시행되고 있는 내용이라는 등의 이유를 들어 기각 결정을 주문했다.

검찰 고발 대상과 관련한 한 위원의 질문에 심사관은 “법인 및 대표이사와 부품영업본부장”이라고 공개했다.

한 상임위원은 “(이번 동의의결 심의는) 대리점이 불이익 받은 사실은 있는데 이를 특정하기 곤란한 사안이라 신속한 구제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출발했다”며 “(신청한 현대모비스 측이) 고민한 흔적이 없어 보여 아쉽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다른 위원은 “최고경영자(CEO) 레벨의 의지 표현이 있었어야 하지 않는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피심인 현대모비스는 첫날에 이어 이날도 대표이사가 출석하지 않고 전무 2명과 로펌 소속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참석시켰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8월 30일 첫 심의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드리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시정방안 보완하라며 두 달 가까운 시간을 더 주었지만 현대모비스가 신청한 동의의결은 결국 기각됐다.

이날 전원회의에는 9명의 위원 중 제척 사유에 해당된 신영선 부위원장, 채규하 상임위원을 제외한 7명이 참석했다.

이로써 현대모비스의 거래상 지위남용 행위 건은 본안 심의에서 제재 수준이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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