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수 의원 ”변호사도 아닌데...100회 이상 공정위 출입“

“오늘 청사에 들어오셔서 심판정 말고 다른 사무실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까”

2016년 어느 수요일 세종시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기자는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 담당 조사관으로부터 화급한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이유를 쉽게 직감할 수 있었다.

기자는 공정위에 등록된 출입기자가 아니지만 여느 수요일처럼 이날도 공정위 전원회의를 참관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후 회의가 열리기 직전 잠깐 심판정 외 소비자정책국장실을 찾아갔다. 오전에 전화를 걸어 국장 비서에게 ‘취재 때문에 그러는데 방문해도 되겠느냐’고 물어보고 ‘오후에 오면 된다’는 말을 듣고 방문했다. 국장은 사무실에 있었지만 기자를 만나주지 않았다.

공정위 전원회의 담당 조사관은 기자가 그날 공정위 청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당초의 출입허용 목적과 달리 심판정 외 다른 사무실을 방문한 ‘작은 실수’ 때문에 감사담당관실 조사를 받았다.

◆5년간 60회 이상 출입 12명 중 8명이 김앤장 소속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의원(인천 계양갑)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해 6월 인사청문회에서 '공정위를 퇴직한 로펌 선배들이 후배와 조직을 사랑한다면 현직 후배에게 불필요한 연락을 취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공정위 출신자들은 퇴직 후에 ‘로비’를 위해 공정위를 빈번하게 출입했다"고 11일 지적했다.

▲ 유동수 의원이 12일 열린 ‘공정한 사회를 위한 재벌개혁의 법적과제’ 학술대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 유동수 의원이 12일 열린 ‘공정한 사회를 위한 재벌개혁의 법적과제’ 학술대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왼쪽 2번째)이 유동수 의원(맨 왼쪽)의 인사말을 경청하고 있는 모습.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왼쪽 2번째)이 유동수 의원(맨 왼쪽)의 인사말을 경청하고 있는 모습.
유동수 의원실이 지난 2013년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5년간 공정위 퇴직자들의 공정위 출입기록을 분석한 결과 퇴직자 126명이 공정위를 찾은 횟수는 무려 2501회에 달했다. 1인당 평균 20회 가량이지만 5년간 100회 이상 출입한 퇴직자도 있었다.

공정위 과장으로 퇴직한 후 국내 최대 로펌으로 통하는 김앤장 고문으로 재취업한 A씨는 2014년 2월부터 올해 5월까지 총 115회에 걸쳐 공정위를 찾아갔다.

변호사로 공정위 사무관으로 근무하다 퇴직 후 김앤장 소속 변호사로 활동 중인 B씨는 2014년 3월부터 2017년 9월까지 총 106회, 공정위를 나온 후 법무법인 바른 전문위원으로 취업한 C씨는 2013년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5년간 104회를 각각 출입했다.

이들 3명은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연락 자제’를 당부한 후에도 공정위를 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 지난 5년간 공정위를 100회 이상 방문판 퇴직자 3명의 출입 현황. [자료 출처=유동수 의원실]
▲ 지난 5년간 공정위를 100회 이상 방문판 퇴직자 3명의 출입 현황. [자료 출처=유동수 의원실]
5년간 60회 이상 출입한 12명의 출입횟수를 모두 합치면 988회에 달하고 12명 중 8명은 김앤장 소속으로 나타났다.

유동수 의원은 “이는 김앤장이 변호사도 아닌 공정위 퇴직 공무원들을 앞세워 고객인 대기업에 대한 처벌을 완화 또는 무마하거나 각종 조사 관련 정보 파악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30회 이상 59회까지 출입한 공정위 퇴직자는 18명으로 이중 12명은 로펌 소속이고, 기업은 KT, SK텔레콤 각 1명씩이었다.

유동수 의원은 “공정위 퇴직자들이 대기업이나 로펌에 취업하는 게 불법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동안 이들에 의한 전관예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실제로 이들은 친정인 공정위를 상대로 로펌과 계약한 대기업에 대한 처벌을 완화 또는 무마하거나 각종 조사 관련 정보를 사전에 취득해 대기업에 전달할 개연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유 의원은 “공정위 재직 때는 불공정을 막는 파수꾼 역할을 하다가 퇴직 후에는 대기업과 로펌에 취업해 이들의 이익을 위해 로비스트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대기업과 대형 로펌으로 진출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금지할 필요가 있으며, 퇴직 후 3년간 관련 부서 업무를 하지 못하도록 한 공직자 취업제한 규정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상조 “내부혁신 국민 눈높이에 못미치는 것 알고 있다”

유동수 의원은 또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 결과를 분석한 결과 2009년부터 올해 5월말까지 공정위를 퇴직한 공직자 중 취업심사를 받은 사람은 47명으로 이중 41명이 기아차, KCC, 삼성카드, SK에너지, 포스코특수강, 삼성자산운용, LG경영개발원, KT, 김앤장법률사무소 등으로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11일 밝혔다.

취업제한을 받았거나 승인을 받지 못한 사람은 6명으로 이중 취업제한 및 불승인 처분을 받은 2명은 이후 한라홀딩스 부사장과 법무법인 화우 고문으로 재취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 의원은 “취업제한을 받았거나 승인을 받지 못한 사람은 6명에 불과한 것은 공정위 차원에서 퇴직자들을 대상으로 경력관리를 해준 데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취업제한은 ‘퇴직 전 5년간 취급한 업무’와 관련이 있는 경우에만 취해지는데, 유동수 의원실이 작성한 ‘공정위 퇴직자 재취업 현황’ 자료를 보면 취업심사를 거쳐 재취업한 퇴직자 중에는 퇴직때 직위가 기업과 접촉할 일이 없는 교육이나 OECD파견, 정보화담당관실, 경쟁제한규제개혁단장 등 근무가 많았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12일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과 한국부패방지법학회가 국회의원회관에서 공동 주최한 ‘공정한 사회를 위한 재벌개혁의 법적과제’ 학술대회 축사에서 “재벌개혁을 추진하고 공정경제를 구축함에 앞서 개혁의 주체인 공정위의 내부혁신이 먼저 필요하다는 인식도 절실하게 가지고 있다”며 “취임초부터 투명성, 청렴성을 제고하기 위해 조직 내부의 혁신방안을 담은 공정위 신뢰제고 방안을 마련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외부인과의 투명한 접촉을 확보하기 위한 ‘외부인접촉 관리방안’을 마련해 시행했다”고 강조했다.

김 공정위원장은 이어 “국민께 보다 신뢰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고자 노력했고, 함께 동참해달라고 사회에 호소했다”면서도 “최근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공정위의 지난 1년간의 노력이 여전히 국민의 눈높이에 크게 미치지 못하다는 점을 공정위가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학술대회를 참관한 유동수 의원은 “(20대 국회 후반기 상임위원회 배정과 관련) 1순위로 정무위원회를 써냈다”며 “정무위로 가게 된다면 공정위가 추진하고 있는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 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유 의원은 20대 국회 전반기 2년간 산업통상자원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노태운-김순희 기자 noh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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