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장이 인사 등 승인권자-사무처장은 의사결정 권한 없어

▲ 지난해 7월 30일 정재찬 전 공정위원장과 신영선 전 사무처장(오른쪽에서 2번째)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출석하는 모습.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정 전 위원장에 대해 영장을 발부했지만 신 전 사무처장에 대해서는 기각했다.
▲ 지난해 7월 30일 정재찬 전 공정위원장과 신영선 전 사무처장(오른쪽에서 2번째)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출석하는 모습.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정 전 위원장에 대해 영장을 발부했지만 신 전 사무처장에 대해서는 기각했다.
공정거래위원회 명예퇴직 간부들의 대기업 재취업에 대해 항소심 법원이 “공정위가 조직적으로 기업에 무리하게 요구해 기업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자리를 만들 게 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4부(재판장 조용현 부장판사)는 지난달 26일 선고공판에서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정재찬 전 공정거래위원장에 1심과 같은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신영선 전 사무처장(이후 부위원장에 임명)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뇌물수수 혐의를 함께 받은 김학현 전 부위원장에는 1심과 같은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하고 보석청구를 기각했다.

◆항소심 “공정위가 기업에 무리하게 요구해 자리 마련”

항소심 재판부는 주된 공소사실인 업무방해에 대해 “김학현 피고인은 (혐의 사실을) 다 인정하고 있고, 김모 전 운영지원과장은 양형 사유와 관련 일부 사실관계를 다투고 있고, 다른 김모 전 운영지원과장은 공소사실 중 일부 항목에 대해 다투고 있지만 나머지는 다 인정하고 있고, 정재찬 전 공정위원장, 신영선 전 사무처장은 전체를 다투고 있고, 나머지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며 “업무방해 구성 요건인 위력의 행사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장은 공정위가 퇴직자를 기업체에 취업시키는 과정에서 위력을 행사했는지 여부와 관련 “이 부분은 기본적으로 운영지원과장과 상대 기업의 인사담당, 대관담당 직원 사이에 주로 있었던 상황”이라며 “검찰에서 기업체 담당자 모두에 대해 조사를 벌였는데, 이들의 진술을 모아보면 일부 진술의 신빙성을 다투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신빙성은 인정된다”고 밝혔다.

기업의 의사와 무관하게 공정위의 요구·요청에 의해 기업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공정위 퇴직자를 채용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경우에 따라서는 인사담당자가 채용에 난색을 표시하자 (그) 상급자 위선을 통해 다시 요청해 취업한 사실도 확인된다”며 “여러 상황을 비추어 보면 공정위가 기업에 조직적으로 무리하게 요구해서 기업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자리를 만들게 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판시했다.

개별 피고인들의 공모 여부와 관련 재판부는 “정재찬 전 공정위원장의 경우 부위원장 재직 때(2011년 1월~2014년 1월) 4건의 (퇴직자) 취업이 있었다”며 “퇴직은 인사권의 대상이 아니지만 퇴직자가 기업체에 재취업해 (공정위에) 자리가 비면 내부 승진 및 보임 인사를 할 수 있는 상황과 맞물려 있어 퇴직자 취업은 인사권자 승인 아래 진행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정재찬 당시 부위원장은 과장급 이상 인사를 위임받아 실질적으로 인사안을 짜고 위원장과 협의해 결정했다”며 “(퇴직자 재취업에 대해 상세하게 보고하고 의사소통했다는) 전 운영지원과장의 진술을 보면 정 전 부위원장은 공정위 차원에서 기업 의사에 반해 무리하게 자리를 만들어 취업시키고 그 자리를 관리했다는 사실에 대해 미필적으로 나마 의식하고 있었다는 1심 판단과 같이 한다”고 밝혔다.

정재찬 전 공정위원장이 부위원장 재직 때 위원장으로 김동수(2011년 1월 2013년 2월)·노대래(2013년 4월~2014년 12월) 전 공정위원장이 재임했다.

재판부는 이어“(공정)위원장 재직 때 (과장급 이상 인사를) 부위원장에 포괄적으로 위임했지만 규정상 권한은 위원장에 있다”며 “정재찬 위원장은 부위원장을 거쳤기 때문에 굳이 상세한 보고가 필요 없었다는 (다른) 전 운영지원과장의 진술을 보더라도 실질적 승인권자로 모두 승인함으로써 기능적 행위지배를 통한 공범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시했다.

◆외부 출신 김동수·노대래 전 공정위원장은 업무방해 무죄

같은 업무방해 혐의를 받은 ‘외부 출신’ 김동수·노대래 전 공정위원장은 1심과 같이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김동수 전 공정위원장에 대해 재판부는 “위원장 취임 후 일부 진행된 내용을 보고받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의심이 들기는 하지만 그 의심이 (퇴직자를 기업에) 추천하는 것을 넘어 기업의 의사에 반해 요구하고 거부하면 윗선을 통해 무리하게 의사를 관철시킨 것까지 인식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이 있다”며 “정황이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보아야 하고, (무죄를 선고한) 1심에 이어 기록을 보아도 달리 볼 이유가 없다”고 판시했다.

노대래 전 공정위원장에 대해서는 “(재임 중 2명이 재취업했지만) 한명은 김학현 전 부위원장 단독행위였고 다른 한명도 관여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피고인의 지시로 퇴직자의 기업체 근무기간을 공무원 정년까지로 한다는 내용을 담은 문건(과장급 이상 퇴직자 재취업 기준안)이 작성된 사실이 있지만 이는 (퇴직자 2명의) 취업이 진행된 이후에 지시해 작성되었기 때문에 취업과 관련성이 없다는 1심 판단은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신영선 전 사무처장은 항소심에서 무죄를 이끌어내 한숨 돌렸다.

재판부는 “신영선 전 사무처장이 공정위에서 오랫동안 근무했고 또 전 운영지원과장이 계속해서 보고했기 때문에 (퇴직자) 취업과정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것 아닌가 판단되고 나아가 취업과정이란 게 (공정위가) 단순히 추천하는 것을 넘어서 공정위가 자리 마련을 요구하면 기업체가 의사에 반해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까지 인식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그러나 공범이라는 것이 단순히 객관적인 절차에 관해 인식하고 있고 결재라인에 있어 보고를 받았다는 점만 가지고 기능적 행위지배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신 전 사무처장이 퇴직자 취업 관련 보고를 받고 명예퇴직 결재를 하였음에도 (무리한 재취업을) 제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능적 행위지배를 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한 재판부는 “(인사 등에서) 실질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실행하기 위한 본질적 행위를 해야 책임질 수 있는데, (정재찬 위원장-김학현 부위원장 체제에서) 신영선 전 사무처장은 운영지원과장이 보고하는 내용에 대해 흡족하다거나 탐탁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의사결정 권한을 행사했다고 보기 어려워 공모공동정범 요소를 갖추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형법 제30조의 공동정범은 공동가공의 의사와 그 공동의사에 의한 기능적 행위지배를 통한 범죄 실행이라는 주관적·객관적 요건을 충족함으로써 성립하므로, 공모자 중 구성요건행위를 직접 분담하여 실행하지 아니한 사람도 위 요건의 충족 여부에 따라 이른바 공모공동정범으로서의 죄책을 질 수도 있다”며 “한편 구성요건 행위를 직접 분담하여 실행하지 아니한 공모자가 공모공동정범으로 인정되기 위하여는 전체 범죄에 있어서 그가 차지하는 지위·역할이나 범죄경과에 대한 지배 내지 장악력 등을 종합하여 그가 단순한 공모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범죄에 대한 본질적 기여를 통한 기능적 행위지배가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10. 7. 15. 선고 2010도3544 판결 등).

같은 혐의를 받은 한모 전 사무처장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반면 두 김 전 운영지원과장은 1심과 같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한편 2017년 1월 중소기업중앙회 감사로 취업하며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를 받지 않아 공직자윤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지철호 현 부위원장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2017년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가 '단초'

검찰은 지난해 6월 공정위가 명예퇴직하는 간부들을 위해 기업체에 무리하게 자리를 요구해 재취업시켰다는 혐의를 잡고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본부 압수수색을 거쳐 관련 전 고위간부 소환조사를 마치고 정재찬 전 공정위원장, 김학현 전 부위원장 등을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이에 앞서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2017년 5월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심리로 열린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재판의 증인으로 출석한 김학현 전 부위원장을 신문하며 “공정위가 퇴직직원에게 대기업 고문 자리를 알선해준다”며 “김 전 부위원장은 지난 2월 수사 때 ‘대기업 측의 요청이 있으면 공정위 운영지원과가 희망하는 직원을 알선하는 역할을 하는데, 공정위 직원의 고문직 취업은 약 20년 정도 됐다’고 진술했다”고 공개했다.

특검팀 검사는 공정위가 추천 요청을 받는 대기업은 삼성전자, 삼성물산, 현대건설, 현대기아차, SK하이닉스, 롯데, LG, 한화, CJ, 신세계, 현대백화점, 두산, 농협 등 20여개라며 관련 자료를 제시했다.

정재찬 전 공정위원장은 다음달 2일 열린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재판 증인으로 출석해 “기업이 인사 추천을 요청하면 운영지원과장이 직원들 중에서 지원을 받아 대상자를 선정해 인적 사항을 해당기업에 보내준다”고 답변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공정위가 특혜를 주었다는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같은 해 2월 3일 공정위에 특별수사관 10여명을 파견해 부위장장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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