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방판법 금지규정 다단계판매원 보호 위한 것 아니다”

 
 

다단계판매원에게 등록, 자격유지 또는 유리한 후원수당 지급기준 적용을 조건으로 연간 5만원 이상의 부담을 지우는 행위를 금지한 방문판매법(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제22조 제1항 규정은 위반한 다단계판매업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정명령, 과징금 등 행정적 제재를 부과하거나 업체나 판매원에게 형사적 제재를 할 수 있을 뿐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제18민사부(재판장 정선재 부장판사)는 A씨 등 9명이 J씨, L업체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1심을 취소하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다단계판매업체-상위 판매원 상대 13억 청구 패소 판결

항소심 재판부는 “다단계판매업자의 방문판매법(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제22조 제1항에 위반한 행위가 다단계판매원에 대한 어떤 주의의무에 위반한 불법행위로 평가될 수 있으려면 이 규정이 다단계판매원 개인의 재산상 이익을 보호하거나 손실을 방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며 “그런데 방문판매법 제22조 제1항에서 다단계판매업자가 다단계판매원에게 일정 수준을 넘는 부담을 지게 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상품의 판매와 무관한 다단계판매원의 지위 그 자체와 관련해 대가가 지급됨으로써 다단계판매조직이 상품의 판매가 아니라 다단계판매원의 모집으로 수익을 얻는 사행적 조직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방지하려는 취지일 뿐 여기에서 더 나아가 다단계판매원의 재산상 이익을 보호하거나 손실을 방지하기 위한 규정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방문판매법 제22조(다단계판매원의 등록 및 탈퇴 등) 제1항은 “다단계판매업자는 다단계판매원이 되려는 사람 또는 다단계판매원에게 등록, 자격 유지 또는 유리한 후원수당 지급기준의 적용을 조건으로 과다한 재화 등의 구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수준을 초과한 부담을 지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시행령 제29조(다단계판매원 또는 후원방문판매원에 대한 부담 범위)는 “법 제22조 제1항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수준’이란 연간 5만원을 말한다”고 정했다.

이를 위반하면 공정위의 시정명령, 과징금 부과 등 조치 외에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할 수 있도록 방문판매법은 규정하고 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 등 9명은 2014년부터 2016년 사이 L업체의 판매원조직이 개설한 서울 대치센터의 홍보, 행사기획, 판매전략 수립 등 업무를 담당하는 위원장 J씨, 소속 판매원들에 대한 관리, 판매실적 독려 등 업무를 하는 센터장 K씨 등 공동피고들의 권유로 L업체의 다단계판매원으로 가입(등록)했다.

A씨 등 원고들은 또 J씨 등(피고)이 상위직급으로 승급해야 더 많은 후원수당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로 권유함에 따라 승급을 위해 거래실적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L업체의 건강기능식품 등을 13억739만여원어치 구매했다.

원고들은 방문판매법이 규정한 ‘연간 5만원 이상 부담 지우는 행위 금지’를 근거로 J씨, L업체 등 피고들이 공동해 각각 9억2293만여원, 2억665만여원, 1889만여원, 5917만여원, 752만여원, 1908만여원, 735만여원, 1483만여원, 5057만여원과 연 5%의 이자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2018년 11월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같은 법원 제36민사부는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제18민사부는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며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었다.

첫째 방문판매법은 다단계판매 등에 의한 재화 또는 용역의 공정한 거래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시장의 신뢰도를 높여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하기 때문에 주된 입법 목적은 판매업자와 판매원 사이의 법률관계를 규율하거나 판매원의 권익을 보호하려는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방문판매법 제22조 제1항이 말하는 ‘부담’은 다단계판매원의 지위와 관련해 조건적이거나 대가적 의미를 가지면 충분하고 강제적이거나 강요, 기망에 의해 부담이 부과될 것을 요하지 않으며, 다단계판매업자와 다단계판매원 사이의 사법상 계약이 이 규정에 위반하였다고 무효가 되는 것도 아니다고 제시했다. 방문판매법 제52조(소비자 등에게 불리한 계약의 금지)는 “제7조, 제7조의2, 제8조부터 제10조까지, 제16조부터 제19조까지, 제30조부터 제32조까지의 규정 중 어느 하나를 위반한 계약으로서 소비자에게 불리한 것은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셋째 다단계판매원이 다단계판매업자로부터 과다한 재화를 구입하는 등 방문판매법 시행령 제29조의 한도(연 5만원)를 초과한 부담을 지는 것이 반드시 다단계판매원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다단계판매원의 등록, 자격 유지, 유리한 후원수당 지급기준 적용 등을 통해 더 많은 후원수당을 지급받는 등의 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문판매법의 연간 5만원을 초과하는 부담을 지우는 행위를 금지한 규정은 다단계판매원의 재산상 이익 보호 또는 손실 방지와 직접적, 구체적인 관련성이 없고, 이러한 규정으로 인하여 다단계판매원에게 발생할 수 있었던 손실이 방지 또는 감소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이는 다단계판매업에 대한 규제의 반사적 효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넷째 방문판매법 제28조 제2항 전문은 다단계판매업자가 같은 조 제1항의 고지의무를 해태한 경우에 다단계판매원이 방문판매법 제23조 또는 제24조의 금지규정에 위반해 다른 다단계판매원 또는 소비자에게 입힌 재산상 손해는 다단계판매업자가 배상책임을 진다고 정하고 있을 뿐이고, 그 외에는 방문판매법에 다단계판매업자에게 다단계판매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시키는 규정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방문판매법 제28조(다단계판매업자의 책임)는 제1항에 “다단계판매업자는 다단계판매원이 자신의 하위판매원을 모집하거나 다단계판매업자의 재화 등을 소비자에게 판매할 때 제23조 또는 제24조를 위반하지 아니하도록 다단계판매원에게 해당 규정의 내용을 서면이나 전자우편으로 고지하여야 한다”며, 제2항에 “다단계판매업자가 제1항에 따른 고지의무를 게을리한 경우에 다단계판매원이 제23조 또는 제24조를 위반하여 다른 다단계판매원 또는 소비자에게 입힌 재산상 손해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다단계판매업자가 배상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경우 다단계판매업자는 다단계판매원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다섯째 만약 원고들의 주장과 같이 다단계판매업자가 방문판매법 제22조 제1항의 규정(연간 5만원 초과 부담지우는 행위 금지)에 위반한 경우 다단계판매원에 대한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본다면 다단계판매원으로서는 더 많은 후원수당을 지급받는 등의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스스로 방문판매법 시행령 제29조의 한도를 초과한 부담을 진 후 기대와 달리 이익을 얻지 못하고 손실을 입은 경우에는 다단계판매업자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되는데 이러한 결과는 자기책임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단계판매업의 사행성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해 방문판매업의 입법 목적에도 어긋난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피고 J씨, K씨가 방문판매법 제22조 제1항에 위반하였더라도 피고 L업체가 시정권고, 시정조치, 영업정지, 과징금의 행정척 제재를 받거나 피고들이 형사적 제재를 받을 수 있을 뿐”이라며 “그러한 사정만으로 다단계판매원인 원고들에 대해 어떤 주의의무를 위반한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형사사건 다단계판매업자는 기소 안해…“이해하기 어렵다”

이에 앞서 J씨 등 L업체에 등록한 다단계판매원 8명은 2018년 6월 방문판매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A씨 등이 승급을 조건으로 13억여원 상당의 건강기능식품을 구매하게 한 것은 연간 5만원을 초과한 부담을 지운 것은 방문판매업 제22조 제1항 위반이고, L업체의 사업 전망에 관해 거짓 또는 과장된 사실을 알리거나 기만적 방법을 사용해 원고들에게 L업체와의 거래를 유도한 행위를 한 것은 “다단계판매자는 거짓 또는 과장된 사실을 알리거나 기만적 방법을 사용하여 상대방과의 거래를 유도하거나 청약철회 등 또는 계약 해지를 방해하는 행위 또는 재화 등의 가격ㆍ품질 등에 대하여 거짓 사실을 알리거나 실제보다도 현저히 우량하거나 유리한 것으로 오인시킬 수 있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같은 법 제23조(금지행위) 제1항 제3호 위반에 해당된다는 이유였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8단독은 지난해 2월 기소된 J씨 등 8명 모두에 대해 연간 5만원을 초과하는 부담을 지운 행위 부분은 유죄로, 거짓 또는 과장된 사실을 알리거나 기만적 방법을 사용했다는 부분은 무죄로 각각 판단해 벌금 100만원씩을 선고했다.

이에 불복한 피고인들은 “L업체가 연간 5만원을 초과하는 부담을 지게 했다고 볼 수 없고, 설령 부담을 지게 했다고 본다 하더라도 이와 관련해 다단계판매원에 불과한 자신들이 다단계판매업자인 L업체와 공모했다고 볼 수도 없다”는 이유를 들어 항소했다.

항소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제9형사부 같은 해 7월 피고인 8명 중 대치센터 위원장 J씨, 센터장 K씨 2명에 대해서만 5만원 이상 부담지운 행위 유죄를 인정하고 나머지 6명은 무죄로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해 조사한 증거들과 다단계판매원 직급 구조, 후원수당 지급 구조 등 사실 및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L업체가 다단계판매원이 되려는 사람 또는 다단계판매원에게 유리한 후원수당 지급기준의 적용을 조건으로 연간 5만원 이상의 부담을 지게 했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단했다.

공모 여부에 대해서는 “방문판매법은 ‘다단계판매업자’를 다단계판매를 업으로 하기 위해 다단계판매조직을 개설하거나 관리·윤영하는 자라고, ‘다단계판매원’을 다단계판매조직에 판매원으로 가입자 자라고 각각 규정함으로써 두 개념을 구별하고 있으며, 부담을 지게 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에 관해 그 주체를 ‘다단계판매업자’로 한정하고 있기는 하다”면서도 “다단계판매업자에는 비단 ‘다단계판매조직을 개설한 자’ 뿐만 아니라 ‘다단계판매조직을 관리·운영하는 자’도 포함되고 여기에 방문판매법이 방문판매, 다단계판매 등에 의한 재화 또는 용역의 공정한 거래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시장의 신뢰도를 높여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해 제정된 법률이라는 점까지 더하여 보면, ‘다단계판매원’으로 가입했다 하더라도 하위 판매원의 모집이나 재화의 판매 등 단순 판매행위의 수준을 넘어서 일정한 범위 내에서 자신의 독자적인 판단이나 권한에 의해 그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다단계판매업자가 다단계판매조직을 관리·운영하며 불법을 실현하는데 적극 기여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다단계판매원 또한 방문판매법 제2조 제6호의 다단계판매업자에 해당하거나 형법 총칙에 의한 공동정범의 규정을 적용해 처벌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다만 피고인 J씨와 K씨에 대해서만 각각 대치센터 위원장, 센터장으로서 적어도 대치센터와 관련된 범위 내에서는 단순 판매행위의 수준을 넘어서 일정한 범위 내에서 자신들의 독자적인 판단이나 권한에 의해 그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L업체가 다단계판매조직을 관리·운영하는데 적극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며 유죄를 선고하고 1번 사업자로 총회장으로 불린 F씨 등 6명은 단순 판매행위조차 하지 않은 점, 하위 판매원의 모집이나 재화의 판매 등과 같은 단순 판매행위의 수준을 벗어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행위를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을 인정해 무죄를 판결했다.

방문판매법 제23조 제1항 제3호 위반 혐의와 관련한 검사의 항소에 대해서는 “원심이 제출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들이 공모해 다단계판매원 또는 다단계판매원이 되려는 사람들을 상대로 허위 또는 과장된 사실을 알리거나 기만적 방법을 사용해 거래를 유도하였다고 보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해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피고인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은 수긍할 수 있다”며 기각했다.

검사와 피고인들 양쪽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모두 기각해 J씨와 K씨의 유죄가 확정됐다.

민사소송 원고 A씨 등은 2018년 11월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내며 피고인 8명과 L업체를 공동피고로 책임을 물었다.

지난해 11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낸 후 형사 항소심에서 6명이 무죄로 나오자 민사 항소심에서 이들을 공동피고에서 제외했지만 올해 9월 패소했다. 원고들이 이에 불복해 상고해 민사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한편 방문판매법 제22조 제1항이 명시한 ‘다단계판매업자’인 L업체는 기소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방문판매법 주무부처 공정위의 온라인사건처리시스템을 살펴봐도 연간 5만원 이상 부담 지우는 행위와 관련해 L업체에 부과한 처분을 찾을 수 없다.

이와 관련 방문판매법에 정통한 변호사는 “(검사가) 다단계판매원을 기소하면서 법이 명시하고 있는 다단계판매업자를 기소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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